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르노그래피: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 (문단 편집) === [[젠더 권력|남성 권력]]의 종류 === 저자는 우선 [[사회과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통하는 "[[권력]]" 의 정의, 즉 "타인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타인에게 강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 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남성]]들과 [[여성]]들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그리고 남성들은 여성들이 원치 않는 무언가를 강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방식들이 존재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 첫째, 저자가 보기에 남성들은 여성에게서 자기(self)를 흡수한다. 남성의 자기는 아무리 커도 작게 느껴지고, 여성의 자기는 아무리 작아도 크게 느껴진다는 것. 이 현상의 원인은 남성들의 경우 "나는 존재를 원한다. 나는 원하는 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 의 신념이 성립하지만 여성들은 "나는 원하는 것을 가질 권리가 있...나?" 에서 멈추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 그래서 남성들은 여성들에게서 자기를 흡수하여 자기를 확대하며, 여성들은 이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기가 축소되어 간다고 본다. 가장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어머니]]들이라고...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심지어 '''남성들은 [[기생충]]이고 여성들은 그 숙주'''라고 한다. --따라서 남성을 기생충에 비유하는 건 이미 40년 된 드립인 것이다!-- 둘째,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육체적으로 강할 것이 전제되며, 여성들이 이를 어길 경우 사회적으로 기피되는데, 이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병약|육체적 연약함]]을 강조하도록 한다. 저자에 따르면 고소득층이고 웬만큼 잘 배우고 잘 사는 여성들일수록 도리어 '청순가련' 한 신체적 무능력의 이미지를 드러내려 한다고. 저자는 남성들이 이런 여성들을 [[트로피 와이프|자신의 부(富)를 통해 구입하여 자기 자신을 '장식' 하는 효과를 얻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물론 남녀 간의 육체적 차이에 의해 유지되기도 하지만, 그 차이는 인간 사회, 즉 법률, 관습, 예술, 문학, 역사, 경제, 가치, 전설에 의해서 더욱 증폭되고 강화된다. 셋째, 남성이 여성들에게 원치 않는 무언가를 행사하는 것은 여성들을 위협하는 과정을 통해 달성된다. 이를 위해 남성들은 자신의 위험성, 공격성, 폭력성, 잔혹성, 투쟁성, 호전성을 여성에게 과시해 보인다는 것. 이러한 위협은 여성의 공포를 자아내는 다양한 행동들이 페니스로서 상징화됨으로써 달성되며, 남성들은 특히 이 위협의 강도, 목적, 대상을 고를 권리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넷째, 저자가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강조하는 중요한 권력은 바로 '''"이름붙이기"''' 의 권력이다. 남성은 여성과는 달리, 무엇에 대해 이름붙이기를 했을 때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남성이 이름붙인 대상은 그 이름이 유지되지만, 여성이 이름붙인 대상은 얼마 못 가서 이름이 소멸된다는 것. 저자가 보기에 이것이 갖는 문제점은, 지금껏 남성들이 여성을 이름붙일 때 [[편견 및 고정관념/성 관련|과히 좋지만은 않은 이름들]]을 붙여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성은 여성들을 '무지한 존재', '직관적인 존재', '감정적인 존재' 로 명명했다. 여성이 "안 돼" 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남성들은 그 의미를 "[[나는 그것만을 위해 존재합니다|당연히 되지, 나는 그것을 원하고 있어, 제발 해 줘]]" 라는 의미라고 제멋대로 정의해 버렸다. 남성들은 [[섹스]]에 대해 자신의 폭력성과 적개심을 혼합해서 정의했다. [[가정폭력|아내에 대한 남편들의 구타]]는 '사랑의 증표' 로 명명했다. [[데이트 폭력|애인에 대한 구타]]는 '에로티시즘' 으로 명명했다. 여성이 성욕을 나타내면 '음란한 여자' 의 딱지가 붙었고, 성욕을 나타내지 않으면 '강간당하기를 학수고대하는 여자' 의 딱지가 붙었다. --도대체 어쩌라고-- 여성이 공부를 시작하면 '좋은 섹스로 치료해 주어야 할 신경증을 겪는 여자' 라고 명명했고, 여성이 집 밖으로 돌아다니면 '돈으로 몸을 살 수 있는 창녀' 라고 명명했다. 드워킨이 보기에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름붙이는 행위는 결국 그 대상을 자신의 소유로 귀속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여기에 역행한다면 남성의 소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며, 그들은 결국 존재 자체가 부정되고 만다. 여성들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언어사용의 방도가 없기에[* 이 지점에서 세칭 [[미러링(신조어)|미러링]]과 같은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이 나왔을 때 그것이 운동가들 사이에서 그럴싸하다고 여겨지게 될 수 있었다. 남성들의 이름붙이는 권력을 전복시키자는 이 움직임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언어의 의사소통적 기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의미를 도외시함으로써 여러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초래했다고 여겨진다.] 이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 다섯째, 남성들은 소유의 권력을 지닌다. 특히 이는 아내의 몸이 남편의 소유물로서 언제든, 그리고 어떻게든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한다. 드워킨은 [[결혼]]을 두고 남성이 여성의 몸을 제도적으로 합법적인 방식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특히 결혼의 본질은 "여성에 대한 [[유괴]]" 라고 주장하면서 단지 그것이 제도화되었기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하였다. 드워킨에 따르면 결혼생활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평생에 걸친 강탈을 의미하며, 남성은 이를 통해 여성을 취하고, 그 상태를 지속하고, 그로써 여성을 획득한다. 여섯째, 남성의 중요한 권력 중 하나가 금권력, 즉 경제적 힘이다. 드워킨은 똑같은 "[[화폐|돈]]" 이라 할지라도 여성에게는 가계부 위의 숫자로서의 의미를 갖는 반면 남성에게는 그에 더해 세상의 모든 가치와 가능성, 지위, 명예를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남녀 간에는 소비생활의 차이가 있는데, 여성은 가난할 때는 생존을 위해, 부유할 때는 남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소비하지만, 남성은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한결같이 오직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소비한다. 더 나아가 남성에게 부유함이란 곧 그 남성이 갖는 [[정력|성적인 힘]]을 표상하는데, 이 맥락에서 '''"[[정액(체액)|정액]]적 [[경제]]"''' 라는 표현을 생각해 볼 수 있음을 보였다. 돈과 정액의 공통점은, 평소에는 축적하고 보존하다가 때가 되면 생산을 위해 투자한다는 것이다. 결국 금전에 대한 미덕은 남성성에 대한 미덕과 상통하며, 부유한 여성을 만난 가난한 남성은 마치 남성적 여성을 만난 여성적 남성이 느끼는 치욕감과도 유사한 것을 경험하고 만다. 이런 남성들은, 저자의 예측에 따르면, (폭력과 같은 위협을 동원하거나 비방하는 이름붙이기를 하는 등) 다른 종류의 [[권력]]의 원천을 끌고 와서 남성성을 보상받아야만 한다. 일곱째, 그리고 아마 이 책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테마인 [[포르노]]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으로, '''남성의 권력은 페니스를 활용한 [[섹스]] 그 자체로부터 나온다.'''[* 상기했던 바, 모든 종류의 남근삽입적 섹스가 이미 그 자체로 여성을 억압하고 학대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당시 페미니즘 내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고려해 보자. 남성의 페니스가 여성의 의지에 반하여 여성을 임신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 원치 않는 여성에게까지 강제로 삽입하는 것이 가능한 기관이라는 것 역시 이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고 봐도 되겠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일부 남성들은 "야한 옷으로 날 유혹한 네 잘못이다" 를 주장하면서, 섹스의 권력이 여성들에게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남성이 어디까지나 의례적인 자극에 대해 [[발기]]로서 원치 않는 반응을 했을 뿐이니 남성이야말로 권력적 약자라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여성의 신체를 대등한 인간의 몸이 아닌 '성적 자극물' 로 대상화하여 추방시켜 버린 권력은 남성에게 있다고 강변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이 그렇게 비쳐지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권력의 행사로서의 섹스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정복 행위, 소유 행위, 권력적 강탈 행위, 자기확대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 그리고 마침내, 이와 같은 남성권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공고히 하는 가장 극명한 매체가 다름아닌 (이제부터 논의하게 될) [[포르노]]라는 것이다. 포르노의 존재 이유는 남성 권력을 자명히 하고, 행사하고, 찬양하며, 이를 위해 여성을 격하시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려, "포르노는 폭력적이고 자기망상적이며, 타인을 유의미한 인간으로 지각하지 않고, 자기쾌락적이며, 타인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자기 행동을 고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폐증]]적'''이다" 라고 평가한다. (때가 때인지라, 자폐증에 대한 이해가 딱 그 시대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이쯤에서 의문이 들 수 있다. 세상에 포르노라는 게 한두 종류가 아니기 때문. 성애라는 것이 세상의 남정네들 수만큼 많고, [[모에]]라는 것 역시 엄청나게 많고, [[Rule 34|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뭐든간에 포르노의 소재가 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드워킨의 생각을 어디까지 일반화할 수 있겠는가 싶을 수 있다. 물론 그는 여기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네 가지의 포르노를 사례로 들어서''' 각각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다. 국내에서 한때 이슈가 되었던 [[맥심(잡지)|맥심]] 잡지 관련 논란과도 유사한 맥락이라고 보면 되겠다. || 〈비버 사냥꾼들〉 삽화 || || '''콘셉트 : 남성 우위, 여성 열위''' || ||<-3>가장 보편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이 문제삼을 만한 소재. 이 사진은 확고하고, 탈취하고, 군림하는 남성의 이미지를 드러내며, 남녀 간 정착된 우열관계를 확증한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성적 추구와 로맨스와 같은 일상 속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여성들에게 느껴지기 때문에, 실제로 여성들을 억압하는 힘을 갖는다고 본다.|| || '''남성 권력의 징후''' ||<-2>사냥꾼 복장을 갖춰 입은 남성, 벌거벗은 여성[br]무기(라이플)를 갖춘 남성, 묶여 있는 여성[br]보호받고 있는 남성, 무기력하게 노출된 여성[br]국부가 감춰진 남성, 국부가 화면 정중앙에 노출된 여성|| || '''여성 독자의 시선''' ||<-2>묶인 여성은 고통스러울 것임[br]모델일지라도 누군가가 실제로 그렇게 묶였었고, 수많은 남성들이 그녀의 몸을 보게 된다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임[br]여성을 '[[비버]]' 로 지칭했기에 인간성이 박탈되는 듯함[br]사냥당해 죽어 있는 (혹은 곧 죽게 될) 여성을 보며 죽음의 공포를 경험[br]이전에나 이후에나 사냥이 계속되며 여성들이 계속 노획당할 것이 생각됨[br]현실에서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남성들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공포가 확산됨|| || 〈여자 때리기〉 소설 || || '''콘셉트 : 여성 우위, 남성 열위''' || ||<-3>일견 '[[페미니스트|해방된 여성]]' 내지 '[[아마존(DC 확장 유니버스)|아마존]]' 캐릭터의 여성들이 등장해서 [[볼버스팅|남성의 고환을 걷어차는 등]]의 내용이 나오기에, 남성 권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잘 보면, 결국 이야기에 등장하는 단 한 명의 남성은 '''마지막까지 안정적인 남성 권력을 유지한다.''' 남성 독자들은 이 남성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여성에게 두들겨 맞는 남성은 이 (아마도 주인공일) 남성에게 "[[호모]]" 라는 모욕을 듣고, 그 남성을 괴롭히던 소위 '해방된 여성' 들은 마침내 이 주인공 남성을 선택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이 [[야설]]의 저자는 여성적인 필명을 내세우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저자들은 [[여성향|여성들이 추구하는 에로티시즘]]조차 남성의 성적 판타지와 똑같을 것이라는 거짓 확신을 얻게 될 수 있다.|| || '''남성 권력의 징후''' ||<-2>여성에게 맞는 남성은 남자다움의 달성에 실패한 벌을 받는 것으로 이해됨[br]([[볼버스팅|볼 버스팅]]은 해당 남성에게 상징적 [[거세]]의 의미)[br]남자답지 못한 남성들이 많아지면 위협적인 여성들이 권력을 강탈해 갈 것이라는 경고성의 메시지[br]작중 등장하는 모든 섹스가 힘과 지배, 잔혹함으로 점철된 [[남성향]]적 성욕의 영역에 포함[br]페미니스트들도 겉으로는 저렇지만 속으로는 진정 자신을 정복해 줄 만큼 강하고 남자다운 남성을 바라고 있다고 거짓으로 선전함|| || '''여성 독자의 시선''' ||<-2>불합리하고 어리석어 실소가 나오는 전개[br]남성만이 공감할 수 있고, 여성들은 현실에서 그 어떤 비슷한 것도 경험하지 않는 판타지 그 자체일 뿐|| || 〈나는 젊은 남자가 좋아〉 소설 || || '''콘셉트 : [[게이 포르노]]''' || ||<-3>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이 [[야설]]은 셋 모두 단단하게 [[발기]]된 페니스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내용의 핵심은 "누가 누구와 했는가?" 가 아니라, 왕성하고도 영원히 작동하는 페니스가 모두에게 "얼마나 큰 쾌락과 그 이상으로 잔혹한 고통을 주는가?" 에만 철저하게 맞추어져 있다. 작중에서 반복적으로 고통이 묘사되는 것은 페니스가 주는 최고의 판타지를 암시하며, 이 고통은 '수' 에게 '공' 이 가하는 성적인 의무로 이해되고, 고통이 클수록 사랑도 크다는 메시지를 제공한다. 세 편에서 [[레즈비언]] 섹스도 등장하는데, 전체적으로 레즈비언은 남성의 지배자, 남자다움을 강탈하는 위험한 존재로서 묘사된다. 등장하는 게이들은 여성용 속옷을 입고 있거나 하는 여성적 속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조차도 극단적 남근숭배 사상에 봉사한다.|| || 〈무제〉 삽화 || || '''콘셉트 : [[레즈비언]] 포르노''' || ||<-3>삽화의 주제는 레즈비언 섹스로 의심되지만, 실제 레즈비언들이 갖는 섹스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 사진의 내용은 두 여성의 관계가 아니라, '''페니스의 역할을 맡은 카메라'''(와 그것을 통해 들여다보는 남성 독자들)의 [[쓰리썸|현장 참여]]를 독려하는 것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두 여성은 '카메라를 향해' 엉덩이와 국부를 불필요하게 노출하고 있으며, 이는 이들이 독자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자세는 '카메라에게 있어' 다분히 굴종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여겨지는 레즈비언들조차 남성의 소유로 예속시킬 수 있으리라는 거짓 확신을 제공한다. 즉, 이 삽화는 여성(들)만이 사적인 공간에서 등장하는 유형의 포르노조차 남성 권력이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논의를 확장시키면, 여성 홀로 나와서 [[자위행위]]를 하는 포르노가 있다고 할 때, 만일 이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그 장면을 '훔쳐보는 구도' 로 촬영하거나, 혹은 여성이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거나, 카메라를 향해 국부를 보여주려 애쓰는 모습이 있다면, 이것 역시 드워킨의 관점에서는 남성 권력이 작동하는 포르노로 분류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